기술이 바꾸는 세계 질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질서의 판도가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 영토 확장이나 군사력으로 패권을 다투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우위가 한 국가의 국력과 영향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 미국과 중국이 있습니다.
한때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성장했던 중국이 이제는 인공지능(AI), 5G, 양자컴퓨팅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맹추격하고 있습니다. 반면 오랫동안 기술 패권을 누려온 미국은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죠. 이 두 강대국의 기술 패권 다툼은 21세기 새로운 형태의 냉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첨단기술: 새로운 시대의 무기
과거 핵무기가 냉전 시대의 상징이었다면, 오늘날에는 AI와 양자컴퓨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런 첨단기술들은 단순히 편리한 기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국가 안보와 경제 발전의 핵심 열쇠가 되고 있죠.
예를 들어, AI 기술은 군사 전략 수립부터 사이버 보안, 경제 예측까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됩니다. 5G 기술은 초고속 통신을 가능케 하여 스마트시티 구축이나 자율주행차 상용화의 기반이 됩니다. 양자컴퓨터는 현재의 슈퍼컴퓨터로는 불가능한 복잡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어, 신약 개발이나 기후변화 예측 등에 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런 기술들은 민간과 군사 분야 모두에서 활용 가능한 '이중용도(dual-use)' 기술입니다. 따라서 이 기술들을 선점하는 국가가 경제와 안보 모든 면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죠.
중국의 부상: '제조 2025'와 기술 굴기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발표하며 제조업 강국으로의 도약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세계의 공장'에서 벗어나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죠.
중국은 특히 5G, AI, 빅데이터, 로봇공학 등 10대 전략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화웨이는 5G 기술 특허 건수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AI 분야에서 구글, 페이스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이런 성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2014년 이후 중국의 혁신 생산성이 미국을 추월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방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한 빅데이터 수집과 활용에서 큰 강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의 모바일 결제 이용자 수는 미국의 9배에 달하며, 각종 기기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양도 미국의 2.2배나 됩니다.
미국의 대응: 기술 패권 수호를 위한 총력전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 미국은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대중 기술 제재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죠.
미국은 중국이 불공정한 방식으로 기술을 획득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기술 탈취, 강제적 기술이전, 사이버 해킹 등의 방법으로 미국의 첨단기술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것이죠. 이에 대응해 미국은 다양한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 수출통제개혁법(ECRA): 첨단기술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합니다.
- 외국인투자위험심사현대화법(FIRRMA): 중국 기업의 미국 기술기업 인수를 막습니다.
- 엔티티 리스트: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합니다.
또한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클린 네트워크' 구상을 추진하며, 중국 기업들을 5G 네트워크 구축에서 배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기술 냉전의 최전선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여러 분야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뜨거운 전장을 살펴보겠습니다.
1. 5G 기술
5G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로 불립니다. 초고속, 초저지연, 초연결이 특징인 5G는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원격의료 등 미래 산업의 기반이 됩니다.
이 분야에서는 중국의 화웨이가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화웨이는 5G 기술 특허 건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죠. 하지만 미국은 화웨이 장비에 백도어가 있어 중국 정부가 이를 통해 정보를 빼낼 수 있다며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2. 인공지능(AI)
AI는 21세기의 전기나 증기기관에 비유될 만큼 혁명적인 기술입니다. 음성인식, 자율주행, 의료진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죠.
미국은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을 앞세워 AI 기술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의 기업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추격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머신러닝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3. 양자컴퓨팅
양자컴퓨터는 현재의 슈퍼컴퓨터로는 불가능한 복잡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차세대 컴퓨터입니다. 신약 개발, 기후변화 예측, 암호 해독 등에 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는 기술이죠.
이 분야에서는 아직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구글이 2019년 '양자 우위'를 달성했다고 발표했죠. 하지만 중국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빠르게 추격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중국 과학자들이 '광자 양자컴퓨터'로 양자 우위를 달성했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기술 냉전의 영향과 전망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단순히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 기술 생태계와 국제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기술 생태계의 분열
미국의 대중 기술 제재로 인해 글로벌 기술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미국은 자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를 공급하는 것을 금지했고, 이에 따라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에 중국은 자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기술 자립자강'을 외치며 반도체, AI 칩 등의 국산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죠.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 중심의 기술 생태계와 중국 중심의 기술 생태계로 세계가 양분되는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제 질서의 재편
기술 패권 경쟁은 새로운 진영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중국 기술 기업들과의 거래를 자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중국은 '디지털 실크로드' 구상을 통해 개발도상국들을 자국의 기술 표준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냉전 시대의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을 연상케 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이념이 아닌 기술 표준을 둘러싼 대립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혁신의 가속화
경쟁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미중 기술 경쟁으로 인해 양국 모두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미국 혁신경쟁법'을 통해 향후 5년간 2,500억 달러를 첨단기술 연구개발에 투자하기로 했고, 중국도 '14차 5개년 계획'에서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대규모 투자는 AI, 양자컴퓨팅, 6G 등 미래 기술의 발전 속도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선택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의 입지는 매우 좁습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이런 상황을 기회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중 양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기술력을 키워나간다면, 오히려 기술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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